애착의 깊이와 ‘심리적 안전거리’의 역설
“아빠랑 있을 때는 정말 얌전한데, 저랑만 있으면 떼쟁이가 돼요.”
“선생님은 아이가 의젓하다고 하시는데, 왜 제 앞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무너질까요?”
아이를 키우다 보면 특정 부모 앞에서만 유독 고집을 부리고, 말을 안 듣고, 감정 폭발을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. 특히 그 대상이 주 양육자일수록 부모의 마음은 더 복잡해집니다. 독박 육아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, 왜 나에게만 이러는지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죠. “내가 너무 만만한가?”, “아이와 궁합이 안 맞는 건 아닐까?”라는 생각이 들며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.
하지만 아동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, 이 현상은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애착이 깊다는 증거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. 오늘은 아이가 왜 유독 한 부모에게만 문제 행동을 보이는지, 그 심리적 메커니즘과 부모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.

1. ‘안전한 기지’의 역설
“이 사람 앞에서는 무너져도 괜찮아”
아이에게 특정 부모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**정서적 안전기지(Secure Base)**입니다. 아이는 이 사람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, 실수해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.
아이들도 밖에서는 긴장합니다. 유치원, 학교, 친척 어른, 혹은 덜 편한 양육자 앞에서는 최대한 참고 ‘착한 아이’ 역할을 수행합니다. 하지만 가장 신뢰하는 부모를 만나는 순간,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풀립니다. 그 결과가 바로 떼쓰기, 고집, 짜증입니다.
아이의 문제 행동은 “이만큼 망가져도 괜찮을까?”라는 무의식적인 사랑의 안전성 테스트이자, 참아왔던 감정을 배출하는 과정입니다.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. 이 사람은 내가 최악의 모습을 보여도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.
2. 부모 간 양육 태도 차이가 만드는 ‘집중 표적’
일관성의 틈을 아이는 정확히 읽습니다
부모 간 훈육 기준이 다를 경우,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가장 많이 받아주는 쪽으로 행동을 집중시킵니다.
한 부모는 단호하고, 다른 한 부모는 미안함이나 피로감으로 더 쉽게 양보한다면 아이는 후자를 ‘감정 배출 창구’로 인식합니다. 또 아이의 행동에 유독 크게 놀라거나,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반응 자체가 아이에게는 강력한 신호가 됩니다.
이때 중요한 점은, 아이가 일부러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반응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. 아이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오는지 끊임없이 실험하며 세상을 이해합니다.
3. 기질적 궁합과 ‘거울 효과’
가장 닮은 관계일수록 충돌도 커집니다
주 양육자와 아이는 기질적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. 감정의 리듬, 예민함의 방향, 불안의 크기가 비슷할수록 갈등은 더 쉽게 증폭됩니다.
부모가 지쳐 있거나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, 아이는 그 미묘한 변화를 정확히 감지합니다. 그리고 그 감정을 그대로 반사하듯 돌려줍니다. 특히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일수록 이 ‘정서적 미러링’은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.
그래서 아이의 문제 행동은 때로 아이의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정서 상태를 비추는 신호등이 되기도 합니다.
4. 서운함을 넘어 관계를 회복하는 3가지 전략
① 감정은 받아주되, 행동에는 선을 긋기
아이의 감정 분출은 이해할 수 있지만, 부모를 때리거나 무시하는 행동까지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.
“밖에서 힘들어서 엄마한테 그러는 건 이해해. 하지만 때리는 건 절대 안 돼.”
이처럼 감정과 행동을 분리해 전달해야 합니다.
② 양육자 간 ‘한 목소리’ 만들기
부모가 둘이라면 반드시 기준을 맞춰야 합니다. 한쪽이 무너지면 아이는 그 틈을 안전하게 활용합니다. 혼자 육아를 하고 있다면, 의도적으로 아이와 분리되는 시간을 만들어 부모 자신의 회복을 우선해야 합니다.
③ ‘훈육 없는 시간’을 의도적으로 확보하기
아이와의 시간이 지시와 통제, 훈육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세요. 하루 10~15분만이라도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에 개입 없이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. 이 시간은 아이에게 “떼를 쓰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다”는 중요한 경험을 줍니다.
5. 결론
아이의 떼쓰기는 당신을 향한 가장 깊은 신뢰입니다
아이에게만 유독 힘들게 구는 그 행동은, 당신이 만만해서가 아닙니다. 오히려 아이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입니다.
밖에서 잘 버티는 아이일수록 집에서는 더 무너집니다. 그것은 아이가 밖에서 그만큼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.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 나아가기 전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다시 힘을 채우는 안전한 항구입니다.
오늘 아이의 투정에 지친 당신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받아야 합니다. 아이의 행동을 사랑의 반대말로 해석하지 마세요. 그것은 사랑이 가장 깊이 닿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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